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폐허로 만든 참혹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단지 남북한만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유엔의 이름 아래 전 세계 16개국이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병력을 파병했고, 수많은 병사들이 이 낯선 땅에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2025년은 전쟁 발발 7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육군기록정보관리단은 전쟁 당시 작성된 군사기록물 8만여 점을 복원하는 작업을 통해, 그날의 기억을 오늘에 되살리는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당시 참전국의 희생과 공헌을 되새기고, 평화와 안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625전쟁 기간
6·25전쟁의 총 기간은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공식적으로 종료되었습니다. 따라서 전쟁 기간은 약 3년 1개월 3일간 지속되었습니다.
전쟁 발발일: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정전협정 체결일: 1953년 7월 27일 (월요일)
다만 이 전쟁은 ‘정전’으로 끝났기 때문에 공식적인 종전은 아니며, 남북한은 오늘날까지도 전쟁 상태가 법적으로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로 인해 한반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전상태가 지속 중인 지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625전쟁 총 사망자 수 (추정치 기준)
대한민국 측
군인 사망자: 약 13만 8천여 명
민간인 사망자: 약 24만 5천여 명
합계: 약 38만 3천 명
북한 측
군인 사망자: 약 40만 ~ 50만 명
민간인 사망자: 약 28만 명 이상 (정확한 통계는 불확실)
합계: 약 68만 명 이상
유엔군 (16개국 전투참전국)
총 사망자: 약 4만 명
미국: 약 3만 3천여 명
기타 15개국: 약 6천여 명
중국군(중공군)
사망자: 약 18만 명 이상
일부 추정에 따르면 40만 명 이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음
전쟁 전체 사망자 총합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약 120만 명 이상이 전쟁 중 사망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여기에 실종자, 부상자, 포로 등을 포함하면 전쟁으로 인한 총 인적 피해는 300만 명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625전쟁, 전 세계가 함께한 전쟁
6·25전쟁은 유엔의 군사 개입이 이루어진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첫 번째 국제연합 집단 안보 작전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7일,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침략을 규탄하고 대한민국을 돕기 위한 군사적 지원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후 미국을 포함한 16개국이 실질적인 전투 병력을 한국에 파병하였고, 5개국은 의료 및 물자 지원으로 참전했습니다.
전투병력을 파병한 나라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프랑스, 벨기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 룩셈부르크, 에티오피아
이들의 병력은 국군과 함께 전선을 방어하고, 낙동강 방어선, 인천상륙작전, 중공군 개입 이후의 고지전 등 치열한 격전지에서 큰 희생을 감내하며 싸웠습니다.
625전쟁 나라별 참전 규모와 희생자 수
다음은 주요 참전국의 파병 규모와 전사자 현황입니다. 숫자는 전쟁의 잔혹함과 그 속에 담긴 연대의 정신을 함께 보여줍니다.
미국
파병 병력: 약 179만 명
전사자 수: 약 3만 3천 명
미국은 전쟁 기간 중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했고,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했습니다. 한미동맹의 뿌리는 이때 형성되었습니다.
영국
파병 병력: 약 6만 3천 명
전사자 수: 약 1,100명
영국은 해·공군을 포함한 종합 병력을 파견했으며, 임진강 전투 등에서 큰 공을 세웠습니다.
터키
파병 병력: 약 1만 5천 명
전사자 수: 약 900명
터키는 참전국 중에서도 용맹한 전투로 유명했으며, 사단급 부대를 파병해 중공군과의 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캐나다
파병 병력: 약 2만 7천 명
전사자 수: 약 516명
캐나다는 해군과 공군도 함께 파병했으며, 한국과의 관계가 이때부터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필리핀
파병 병력: 약 7,500명
전사자 수: 약 112명
아시아 유일의 파병국 중 하나로, 방어전과 순찰 임무에 헌신하였습니다.
태국
파병 병력: 약 6,000명
전사자 수: 약 129명
태국군은 연합군 후방 기지 및 고지 점령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스, 콜롬비아, 뉴질랜드, 벨기에, 에티오피아, 룩셈부르크, 남아공 등은 각기 병력을 파견하여 유엔군의 일원으로 싸웠고, 모두 합쳐 유엔군 전사자는 약 4만 명에 달합니다.
625전쟁 기억해야 할 숫자, 그 이상의 의미
6·25전쟁은 이제 역사 속 한 장면으로 남았지만, 그 전쟁의 결과로 우리는 오늘의 자유와 번영,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누리고 있습니다.
1950년,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16개국의 병사들은 이름도 낯설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이 땅에서 오직 ‘자유’와 ‘정의’라는 하나의 신념으로 생명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들이 흘린 피는 단지 전쟁터의 흔적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토대입니다.
통계로 남은 사망자 숫자는 무심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 하나하나에는 가족의 품을 떠난 젊은 병사의 미래, 돌아오지 못한 청춘의 이름, 그리고 말없이 전장에 쓰러진 이들의 용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전쟁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르쳐주고, 평화가 얼마나 값진지를 증명한 존재들입니다.
이제 그들을 기억하는 일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미래를 위한 책임입니다.
전쟁기록물 복원 사업은 단지 낡은 종이를 살리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 기록 안에 담긴 당시 병사들의 결정, 전투의 긴박함, 그리고 그날의 혼란과 희생을 되살리는 과정이며, 후세가 다시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역사의 숨결을 되살리는 일입니다.
6월 25일,
우리는 단지 전쟁의 시작일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희생 위에 세워진 오늘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평화를 만들어가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는 날로 만들어야 합니다.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기억 위에 세운 존중과 연대의 기반 위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한반도의 안보, 세계 속의 평화는 누군가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 기억이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역사를 잊지 않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가교가 되어야 합니다.